우리라는 부류의 사람들은 늘 밝을 때보다 어두울 때, 시간이 멀리 있을 때보다 가까이 다가왔을 때, 함께일 때보다 고립되어 있을 때 시작됩니다. 이를테면, 분명히 후회할 글을 토해내는 새벽 3시를 사랑합니다.
낮 12시 10분, 태평하게 태양이 세상을 비추지만 지금 시간이 아니면 또다시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써야지’ 라는 생각을 반복한 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 새벽 3시 속으로 잠시 여행 왔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헤어진 남자친구나, 사이가 멀어진 친구들에게 한바탕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영원히 보내지 않을 각오를 하고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썼던 글임에도 불구하고 보내지 않았던 글이기에 다시 읽어보니 솔직한 편이더군요. 누군가를 투영하지 않아도 되고, 대화처럼 어떠한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켜야 할 규칙 따위 없고 술자리에 껴 있는 마른안주처럼 기교도 필요 없죠. 명확한 주제 의식 없이 써 내려가다 보면 편지에는 그리움만 남아요.
편지를 주고받자는 제안을 들었던 순간만큼은 즐거웠습니다. 어쩌면 당연해서 잊고 살던 감정들을 담백하게 풀어낼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어요. 다음날 산책하고, 밥을 먹으며, 어떤 글을 써야 멋진 모습으로 남을지 고민됐습니다. 아마 편지가 ‘영감’이 돼야 한다는 압박같은 것 아닐까요. 그러던 중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시나리오를 쓰며 번뜩 정신이 들더군요.
초심을 잃었나 봅니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솔직함이 담긴 글의 종류라는 걸요. 시나리오를 닫아버린 후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봅니다. 앞으로 우리가 쓸 편지는 읽는 이가 어리둥절할 만큼 어떠한 목적 없는 글로 향하겠죠. 다만 잊어서 안 되는 건 마음을 전달하는 일. 그 뿐입니다.
두서가 아주 길었어요. 잘 지내시죠. 2021년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샤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요. 우리에게 비슷한 점이 있다면 게으르다는 것과 마음을 잘 숨긴다는 거죠. 그래서 샤인의 끝을 상상할 수 없어요. 외면하고 싶은 감정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살아가는 샤인과 나는 마치 정리 안 된 컴퓨터 바탕화면처럼 존재해요. 그래서 서로의 깊은 마음을 내다볼 수 없죠. 이 편지가 끝날 때쯤 당신의 끝과 시작을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길 바라요.
이제 몇 밤을 더 자고 나면 정확히 30살이라는 궤도에 들어 오겠네요. 나는 정확히 30살이라는 궤도에서 벗어나 31살이 됩니다. 사실 삼십 대라는 궤도에 들어와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십 대의 젊음만 찬양합니다. 우리는 곧 청춘이라고 불렀고요. 그런데 나는 그 젊음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불행하게 보낸 건 결코 아닙니다. 허구의 나를 만들어 이십 대의 기억을 조작하냐고요? 아니요. 누구보다 자유롭게, 구속 없이 보냈지만, 한구석이 허전했거든요. 때문에 삼십 대는 나에게 허전했던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며 지루한 시간을 견디기로 했어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강박 같은 행위입니다. 나는 숫자가 딱 맞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령 12시를 좋아한다거나, 15시 30분과 같이 정렬이 맞춰져 있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애매한 15시 27분에는 무언가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29살과 30살 그 사이를 가장 아꼈습니다. 25살, 26살, 27살 세계를 돌아다니던 그때보다 더요. 이건 분명히 0과 9가 갖는 숫자의 힘일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시작하고자 할 때 충고라는 벽보다 자신의 벽에서 막힙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그냥 시작하면 됩니다.’라는 미디어와 서적들의 외침에 불신을 갖는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나라는 벽에 이미 부딪혀 있는 상태에서 '그냥'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분명히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마음과 환경들이 존재할 때 나는 시작하게 되거든요. 세상에 ‘그냥’은 없습니다. 설사 있을지라도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거든요. 내가 모든 일을 목적 있게 살아가는 계획적인 사람이냐고요? 샤인도 알겠지만 충동적인 사람이라 모든 일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0과 9가 갖는 힘으로 인생의 박자를 맞춰가고 있어요. 조금씩 엉성한 풍요로움을 만들고 있습니다.
9시 29분에 잠에서 깬다면 9시 30분에 몸을 일으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할 것이고, 15시에는 영양제를 몸에 쑤셔 넣을 것이며, 22시 30분에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을 청할 것이라고요. 딱히 규율은 없어요. 완전한 자유를 만들기 위해 규칙을 만들어가며 30살의 끝을 보내고 있습니다. 0과 9가 갖는 힘 때문일까요?
숫자 0과 9를 사랑합니다. 마치 0과 9는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나 자신 같지만 무언가를 결심할 수도, 끝낼 수도 있는 그런 숫자 같아요
인간에게 서른은 꽤 많은 단상을 주는 해인 것 같습니다. 마치 토성이 30년 주기로 태양을 한 번 도는 것처럼, 우리는 삶의 한 획을 한 번 돈 거나 마찬가지네요. 곁에 있는 스물아홉 또한 의미 있는 숫자고요. 아홉수 인생, 그리고 이제 앞으로 올 서른이라는 타이틀 속에서 결국 우리는 아주 조금씩 자라나겠죠.
오늘의 편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당신의 0과 9를 응원하며.
사랑을 담아
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