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방식으로 생을 말하는 제피에게
급속도의 답장을 받고 일주일 만에 답을 하네요. 안녕 제피. 일요일 오후를 잘 보내고 있나요. 고민을 잔뜩 안고 제피에게 이야기를 시작하려 해요. 제 늦음으로 서간문의 순서가 꼬이는 바람에 어떻게 이어 나가면 좋을까 고민했어요.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말하려는 고민은 제피의 편지 말미에도 나와 있기 때문이에요. 삼각형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들을 날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제피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니까 언제 어디서든 제피의 세상을 보여주겠죠.
요즘 제게 묵직하게 잡혀 있는 생각은 올바른 글쓰기에 관한 것입니다. 나만 읽는 일기라면 상관없겠지만, 타인에게 읽히는 글은 다르니까요. 이 글 역시 지금은 제피에게만 읽히지만, 차후에는 많은 이에게 읽히게 되겠지요.
처음 글을 좋아하게 된 건 소설 덕분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었습니다. 김해. 제가 살던 작은 도시 밖에 모르던 저는, 소설을 통해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간접적으로 직면해 갔어요. 언제나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다른 세상을 전해주던 매개체였죠.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시기에 맞는 책이라는 것은 모른 채로, 닥치는 대로 읽어갔어요. 아마 전국에 있는 초등학생 중, 읽으면 안 되는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아이였다고 자부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섹스를 책으로 접했는데요.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이라는 작품이었어요. 마리아라는 창녀의 이야기가 책의 서두부터 어린 제 시선을 이끌었습니다.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밋밋하게 진행하는 성교육에 비하면 너무 충격적인 세상이었어요. 망가져 버리는 한 사람의 삶을 저는 묵묵히 읽어 내렸죠. 자세한 행위의 묘사까지요. 저는 이 책을 당시 학교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읽어보라 권했고, 그 친구는 바로 부모님께 걸려버렸어요. 친구의 부모님은 바로 나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주의시켰습니다. 아마, 제가 친구의 부모님이었다고 하더라도 같은 방식의 액션을 취했을 것이라고 예상되네요.
이건 당신에게 말한 것 같기도 한데요. 7살 때는 화장실에 꽂혀있는 시 한 편에서 ‘오르가슴’이란 낯선 단어를 발견하고 수업 중이시던 어머니께 물어보았죠. 현명한 나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어요.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를 말한단다.”
그래서 저는 틈만 나면 그 단어를 썼지요.
아무 책이나 읽어버리는 어린 시절 탓에 온갖 나쁜 말들과 어른의 섹스를 배우고, 한편으론 아름다운 마음가짐 같은 것들도 배웠어요. 하지만 어른이 되자, 그게 과연 옳은 것이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이비시터로 아이들을 돌본 적이 있어요. 제가 가르치던 7살짜리 아이가 다섯 살배기 동생에게 목을 베어 버릴 것이라고 말했어요. 책에서 읽은 문장이었대요. 영화의 전체관람가처럼 책에도 등급을 매겨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민은 이것이 아닌데요. 에세이에 관해서입니다.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죠. 그나마 소설이나 시는 무엇을 가르치려 들지 않지만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경우 삶을 가르치려는 문장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요. 요즘은 인스타 둘러보기로 텍스트를 보아도 이런 것투성이입니다. 실제로 본 예를 들고 올게요.
사랑받는 여자의 법칙
- 답장을 삼십 분 이내로 하기
- 그 사람을 1순위로 두기
- 상대를 위해서라면 나를 희생하는 마음을 항상 가질 것
이런 짧은 텍스트의 끝에는 사랑에 관한 에세이의 홍보로 이어져요. 수많은 사람이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댓글을 답니다. 연인의 계정을 태그하기도 하죠.
맞는 말들도 보았지만, 아집 강한 시선의 글을 더 많이 보았습니다. 자아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단계에서는 쉽사리 이런 말들에 흔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로, 작가는 가장 위험한 무기를 지닌 직업이고, 그렇기에 늘 고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이유로, 제 글을 쓰기가 어려워요. 혹시라도 제 세상을 누군가가 ‘옳다’라고 생각해 버릴까 봐요. 한 문장 한 문장이 무거워져서 견딜 수가 없어요. 신경 쓰이는 문장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거든요.
끝내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은 저이지만, 과연 내가 무구한 어린아이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을 만한 존재인가 싶어, 두렵습니다.
저는 제피의 첫 책을 참 좋아합니다. 책 속의 당신은 누구보다 날카로운 사람이지만 부드러운 방식으로 생을 말해요. 상처를 입고 회복을 하는 과정에서, 읽는 화자라면 누구든 ‘이렇게 살아라.’가 아닌 ‘이렇게 사는 삶도 있다.’는 라는 마음으로 읽어갈 수 있거든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풀지 못한 채로 답장을 마무리하네요.
언제나 답 대신 현명한 조언을 주는 당신의 답변을 기다릴게요.
샤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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