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넘치는 샤인에게
주머니에 꼭 숨겨둔 손을 빼내고 걷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요. 벌써 2월의 중순을 지나네요.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이제 서서히 봄이 오려나 봅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계절은 늘 소리도 없이 찾아오네요. 이번 한주는 바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슨하게 보내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계획했던 일 중에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이것, 저것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드디어 내일 수십 년 만에 인터넷 강의라는 걸 신청해 보네요. 영어 공부를 왜 하냐고 물어본다면 며칠 전 피씨티에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랑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데 역시 나의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조금씩 까먹고 있더라고요. 사실 몇 해 전부터 영어 자격증을 따보자고 결심만 했고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이번에는 마음먹고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늘 샤인에게서 편지가 오면 그 주 내내 샤인을 생각해요. 종일 생각한다고 하면 거짓말을 들키겠죠. 아주 잠깐씩 떠올려요. 문을 열다가 샤인의 문장이 생각이 나고, 물을 마시다가 샤인의 문장이 생각나요.
이번 편지에는 유독 외면하고 싶고, 한참이나 거리를 두었던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었네요. 그래요. 우리가 안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줄곧 샤인에게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나약한 모습들만 보였던 것 같아요. 뚜렷한 해답을 줄 수 없지만 구차한 변명이라도 써보려고 합니다.
나는 1992년 3월 8일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아주 늦은 나이에 낳았어요. 외동이자 늦둥이죠. 그래서 늘 부모님의 인적 사항을 보고 선생님들은 우리 부모님 나이에 화들짝 놀랐어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우리 엄마, 아빠는 사실 친구가 많이 없어요. 회상해 보면 아빠는 남들보다 조금 불편한 몸을 갖고 있던지라 자신이 남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밤늦게까지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어려서 소아마비로 다리 한쪽이 불편하거든요. 내가 봤던 아빠의 모습은 회사, 집 그리고 그나마 갖고 있던 취미인 낚시는 내가 중학교 갈 때쯤인가 그만뒀어요. 아빠는 술을 마시지도 담배도 피우지 않아요. 술을 마시던 아빠의 모습을 봤을 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평택 쌍용 직원 해고’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됐어요. 그중 우리 아빠도 한 명이고요. 처음으로 아빠는 술을 마셨는데 그날도 친구와 치킨이라도 뜯으며 밖에서 마신 게 아니라 우리 집 부엌에서 소주 한 병을 혼자 조용히 마시고 잠이 들더라고요. 해고통지서를 아빠보다 먼저 발견했어요. 편지에 적힌 글자를 보고 아빠를 그렸습니다. 차마 내가 봤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어요. 편지를 다시 풀로 동봉한 후 자리에 돌려놨습니다. 우리 아빠는 평생 일과 집뿐입니다.
엄마는 친구가 많아 보일지 몰라도, 까탈스러운 성격 덕인지 주변 아줌마들이 자주 바뀝니다. 아빠와 다르게 한 성격 하시는 분이라 어울리던 아줌마와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요. 처음 이야기하는 건데 엄마는 아줌마들이랑 시장 내에서 싸움을 일으켜 몇 번이나 아빠는 경찰서에 있는 엄마를 찾으러 가기도 했고요.
엄마랑 가장 친했고 오래된 아줌마는 아래층 아줌마였거든요. 매일 밤이면 아래층 언니네 집에 놀러 갔어요. 우리 가족이 오랜 시간 키웠던 강아지 ‘별이’도 원래는 아줌마네 강아지였지만 어느새 별이는 우리 손에 키워졌어요. 별이는 밥을 더 많이 먹고, 몸집도 점점 커갔어요. 잘 자라난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서 아줌마네에 놀러 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그 집에 가지 못하게 했어요.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아줌마와 서먹해진 사이가 됐죠. 아직도 엄마와 그 아줌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 가족은 생각보다 주변에 친구가 없어요. 일과 가족 외에 관심이 없는 아빠와 너무 뚜렷한 성격을 가진 엄마 덕에 나름 폐쇄적인 가족 속에서 자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유년 시절을 기억해 보면 가족 외에 타인의 사랑을 자주 접하며 살지 못했어요. 때문에 타인의 사랑이 궁금했던 나는 늘 사랑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나는 폐쇄적인 사랑이 편했어요. 그런데 수많은 사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밝고 쾌활해야 했죠. 그래서 유난히 친구가 많고 애인도 잘 사귀던 시절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치 가면을 쓰고 꼭두각시처럼 그냥 사회에 무던하게 잘 꿰맞추기 위해 생존하며 만들어진 관계였죠. 그러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살갗을 보인 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였습니다. 여행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기 때문에 오히려 객관적으로 관계를 볼 수 있게 했어요.
원래부터 사랑이든 뭐든 애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 왔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샤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경계를 풀고 나약한 품을 서로 보여주며 체온으로 끌어안는 나를 볼 수 있다고 말했죠. 이 문장을 보자마자 가끔은 타인이 나보다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넉넉해졌어요. 숫자에 숫자가 더해져서 서른이라는 나이에 도착했고 어엿하게 밥벌이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나 크게 나를 바꾼건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보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는가’에 대한 고민이 앞서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우리는 망상을 좋아하죠. 수많은 망상 중에 하루에 한 번씩 꼭 하는 망상이 있습니다. ‘어떻게 죽을까’가 아니라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라는 망상입니다. 장례식에 검은 옷을 입고 내 영정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억할지 생각해요. 아주 많이요. 그러다가 망상이 깊어지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어보고 싶을 만큼 그 모습이 궁금 하더라고요.
나의 사랑에 담겨있던 경계가 풀린 건 아무래도 ‘죽음에 대한 고찰’ 일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어렸을 적 폐쇄적인 사랑을 받았던 내가 가면을 쓰고 활개쳤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고요하게 마음을 관찰하기 시작했죠.
언젠가 마음과 육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사랑은 죽음과도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끝을 떠올리니 시작이 보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죽을까’가 아니라 ‘내가 죽으면 누가 올까’라는 질문이 떠올라요.
그러니까 인생은 혼자라느니, 사랑은 죄악이라느니, 친구가 없다는 문장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봐요. 나는 결코 세상을 평평하게 사랑하지 못하지만 늘 사랑을 갈망하는 모순적인 존재인듯해요.
나의 사랑은 끝부터 시작합니다. 점점 희미하게 해답이 나오고 있네요. 남들과 다른 답을 걷고 있지만 결국 같아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 결국 사랑을 외치는 이 모습은요.
샤인 덕에 순창에 또다시 다녀왔어요. 오랜만에 희경 언니와 캠핑했고, 밝은 달빛 아래 오랜만에 호흡을 크게 내쉬고 뱉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도 여전히 나는 죽음을 상상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샤인의 편지가 생각이 났어요. 나는 당신이 친구라는 이유로 이제 더 이상 죽음에 어떻게 사람들이 슬퍼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가 들었습니다. 당신 말대로 나는 조금씩 경계를 풀고 나의 사랑과 타인의 사랑이 나선으로 돌고 있다는 게 증명이 되고 있으니까요.
늘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인 샤인에게 나는 늘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더불어 나와 반대인 사랑이 넘치는 샤인의 죽음에 대한 고찰이 궁금해지는 한 주입니다.
사랑을 담아,
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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