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저물어 가는 샤인에게
저물어 가는 것들을 사랑한다.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추웠던 그날 두 시간이나 걸려 인천에 있던 극장에 다녀왔습니다. 샤인은 그곳을 이미 알고 있더군요. 바로 애관극장입니다. 영화를 사랑한다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현존한 애관극장에 대해 처음 알았습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따로 있었는데 제목이 예뻐서 보려던 영화는 뒤로했어요. 어쩌다 계획에도 없던 영화를 보러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영화는 화려하다거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주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영화가 끝나고 촌스러운 디자인이 대단해 보일 만큼 오래된 것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뜬금없지만 5년 전 여행에서 돌아와 새로운 집을 구했고 그 집은 유난히 가격이 싸더라고요. 이사를 하고 몇 개월 되지 않아 동네는 재개발로 한창이었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가는데 그날도 여전히 한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어요. 철거 현장 앞을 지키는 노인을 봤습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자신이 살던 동네가 재개발로 인해 높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일대가 번화가처럼 붐빌 생각에 행복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서 본 다큐멘터리에서 그랬거든요. 우리가 역사로 남겨야 하는 건축물에 실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래되고 낡아버린 주거 환경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요. 문득 다큐멘터리가 생각나면서 함부로 그들을 동정하거나 감정 이입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나 생활의 편의라던가 쾌적한 환경을 떠나서 오래된 동네에는 그들의 추억이 있겠죠. 다시 추억하지 못할 공간들에 대한 아쉬움의 잔향이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 그 노인의 자식들이 좁은 방구석에 모여 따뜻한 밥을 함께 먹었을 것이고, 교복을 수선해 주기도 했겠죠. 아무리 새로운 환경이 쾌적함을 준다 한들 그 쾌적함이 수십 년의 녹슬어 버린 추억을 대신할 수는 없겠죠.
나는 아주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기술을 빨리 터득하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 되길 꿈꿨습니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종종 새로운 것들이 낯설 때가 많아요. 오래된 것들이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면 지나간 것들은 어느새 사라져 가고 힘을 잃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이나 쓰라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물건을 사면 나는 물건에 감정을 이입을 자주 해요. 예를 들어 머리끈 하나를 사면 끊어지기 전까지 잃어버리는 일이 대체로 적습니다. 머리끈에게 생명이 없을지라도 머리끈은 나의 머리를 묶었고 나와 많은 시간 함께 했으니 쉽게 버리지 못해요. 특히나 특별한 사람들이 준 옷이나 책은 더욱더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인도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 세상의 모든 인간과 물건들이 썩지 않고 죽지 않는다면 세계는 이미 쓰레기와 전염병으로 멸망할 것이라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썩 틀린 말은 아니더라고요. 떠나보낼 힘. 그게 어쩌면 현명하다는 것을요.
물론 여전히 나는 저물어 가는 풍경이나 시간을 동경합니다. 저무는 태양의 시간을 사랑합니다. 새로운 시작보다 때로 저물어 가는 시간 속에 진정한 시작이 있다고 믿으니까요.
각자에게는 이야기와 시간이 있습니다. 이건 불가피한 진실입니다. 모든 것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요. 그러나 때로 우리는 비효율적인 존재입니다.
분명 모든 일에 이유가 있듯 쓸모없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것들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이유는 새로운 시작이나 삶에 대한 동경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저물어가고 싶은 일종의 발악일 뿐.
저물어 가는 것을 동경하며, 나는 오늘도 하나의 서간문을 떠나보냅니다.
평온하고 따뜻한 한주가 되길 바라며.
사랑을 담아,
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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