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8일 세상이 온통 하얀색입니다. 사람들은 이걸 첫눈이라고 부르는데 이상하게 그날 내린 눈이 첫눈인지 마지막 눈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이상한 의문이 꼬리를 물더라고요. 올해가 끝나가는 데 이게 첫눈인가?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날의 눈을 첫눈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전혀 첫눈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죠. 눈이 한바탕 내리기 전에는 날씨가 매우 추워요. 반대로 눈이 내릴 때는 오히려 세상이 따뜻해지죠. 마치 우리 삶처럼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마음과 몸이 요란스럽게 떠들썩 거리지만, 막상 일이 일어나는 순간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흘러가죠.
샤인은 올해의 첫눈인지, 마지막 눈인지 하는 것을 보았나요? 한바탕 내린 눈이 하루를 온종일 따뜻하게 했을까요? 혹은 그 눈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12월 18일의 눈은 첫눈일까요. 마지막 눈일까요.
편지의 시작을 열어 봅니다. 안부 속에 숨겨진 질척거림이 느껴졌을까요? 한라산에 끌고 가기 위한 계략은 역시나 실패했지만 아쉽지 않아요. 예상했던 일입니다.
오늘은 어떤 내용을 쓸까 고민하며 홍제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문득 걷다가 오래된 여행길이 생각났어요. 나는 사람들 앞에서 무용담처럼 여행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경험이 절대 하찮지 않지만 쉽게 이야기를 푸는 게 여간 쑥스러워요.
다만 오늘은 금기를 깨고 당신께 여행담을 나누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잘하지 않던 여행 이야기를 자세하게 풀어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떤 나라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샤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단 한 곳입니다.
늘 사람들은 신기한 듯 물어요.‘왜 인도에 가는 거야?’,‘거기에 뭐가 있는데?’라는 질문을 합니다. 답은 늘 없어요. 답이 왜 없냐고요? 그곳에 가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아요. 거기에 뭐가 있냐고요? 아직 인도라는 세계를 다 알지 못하지만, 향신료와 카레 그리고 타지마할이 있겠죠.
굳이 이유를 나열하자면, 느린 기차 속에서 떠오른 영감을 위해 인도행 티켓을 끊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시간을 견디기 위해 떠올랐던 사색들이 훗날 희망을 품게하고 일상을 버티게 하니까요. 때문에 주기적으로 삶이 멈췄을 때 잃어버린 나를 그곳에서 찾아왔어요.
지금쯤이면 인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하지만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 덕에 오래된 기억을 하나씩 꺼내 허전한 이야기를 채워봅니다.
문득 처음 바라나시를 여행하던 때가 생각났어요. 그날도 하릴없이 가트를 걸었습니다. 걷다 보면 변을 밟기도 하고, 사람들이 죽음을 기리는 모습을 보기도 하며, 길을 잃기도 하죠. 혼돈의 거리 끝에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10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를 만났습니다. 나는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아이가 나에게 장사를 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는 나에게 역시나 헤나를 하지 않겠냐고 묻더라고요. 가벼운 주머니에는 정확히 100루피가 있었습니다. 알겠지만 100루피면 세 끼를 해결할 수 있었기에 나름 큰돈이었습니다.
귀찮게 굴던 아이에게 헤나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어요. 지지 않고 아이는 답했습니다. 헤나를 하면 더욱 예뻐질 나에 대해서 설명하더라고요. 나는 그때 아주 꼬질꼬질했는데 말이죠. 괜찮다고 하며 뒤도는데 끝까지 옷자락을 붙잡고 헤나를 영업하더군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끈기 있는 아이의 당돌함이 영 짜증 났습니다.
‘난 헤나가 필요하지 않다고.’
아이는 지지 않고 이번에는 동생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헤나를 하나 하면 어린 동생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지금의 나라면 그깟 100루피 담배 한번 안 피고 말지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려주는 헤나를 지켜봤겠지만 그때의 나는 마음이 좁았습니다(비겁한 변명을 양해해주세요).
‘나도 돈이 없다고.’
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포기했습니다. 이건 명백한 승리라고 여기며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돌아보니 아이는 외국인이 보이면 옷자락을 붙잡고 헤나를 물었어요. 몇 명은 나와 다르게 요구를 들어주더군요. 구차했던 모습을 이끌고 서둘러 숙소에 돌아왔습니다.
삐걱거리는 매트리스에 누워 음악이라도 들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연결했습니다. 차분한 클래식이 달팽이관을 타고 들어왔고, 내 머리맡에 덜렁거리는 창호지로 새어 나온 갠지스강을 음미하며 무신경하게 핸드폰을 켰습니다. 포털 사이트를 켜니 세상이 떠들썩하더라구요. 지금 나와 떨어진 나의 고향 대한민국에서 떠들썩거리는 유명 기업의 비리 사건, 여성들을 살해한 파렴치한 살인마들의 이야기, 국회의원 자재가 거액의 돈으로 취업을 한 사건 등등 힘 빠지는 기사가 빼곡했어요. 순간 나를 스치던 생각은 비리를 했던 누군가보다, 얍삽하게 취업을 한 누군가보다 정작 2,000원에 화를 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이었어요.
유명 시인은 말했습니다. 하늘 아래 부끄럼 없이 시를 쓰자고. 순간만큼은, 아니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되돌리면 나는 시는커녕 일기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이 맴돌아요.
나의 분노를 정작 써야 할 곳에 쓰지 않고 괜한 곳에 쓴 나 자신에게 실망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후로 감정을 정확하게 분별하는 힘을 길렀다는 것뿐입니다. 여전히 헤나 하나에 화를 내던 나는 부끄럽지만요.
우리는 점점 지쳐가는 세상 속에 중심을 잃고 맙니다. 나아가 무기력과 무관심으로 이어지죠. 나는 한창 분노하며 살았는데, 배가 부른 건지 종종 그때를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편지를 쓰려고 한참을 걷다 보니 내가 분노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어쩌면 우리가 쓰는 편지로 인해 흐릿해졌던 결심을 선명하게 채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바탕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고 나니 고해성사라도 한 듯 마음이 수수해지는 일요일입니다. 샤인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끝까지 써낼 것입니다. 내가 써야 할 감정들은 이곳에 있어야 하니까요.
부끄러움이 많은, 부끄러운 일들이 아주 많았던 제피로부터.
사랑을 담아,
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