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제피.
제법 서른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1월의 중순입니다. 새로운 한기를 축복하며 작업 공간의 새로운 벽 등을 설치했어요. 설치하고 나서 쓰는 첫 번째 글이네요.
조명에서 내리는 빛은 딱 제가 원했던 만큼 어렴풋해요. 해외 배송을 2주나 기다린 나의 인내심과 어설픈 망치질, 그것을 메꿀 만한 글루건의 합심이었죠. 최근 작업공간에 있는 탁상 등의 갓이 자꾸만 제 시선을 앗아간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얼마 전 제피의 작업실을 구경하러 집에 들어서자마자 튀어나온 못 두 개에 대해 질문을 건네었죠. 콘크리트 벽을 뚫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아는데도 기다란 못 두 개를 정갈히 박아(모양새는 정갈하지 않아 보였지만 내가 떠올린 못을 박는 당신의 모습이 그러했어요.) 선반을 튼튼하게 설치한 것을 보고, 오늘 아침이 밝자마자 망치를 찾았죠. 전동 드릴보다 쉬워 보였지만, 겁이 났습니다. 몇 번이고 못을 놓쳐 못은 소파 밑과 책상 밑, 여기저기 튕겨 나갔어요.
계속해서 망치질에 실패해, 이미 구부러져 변이 하나 없는 삼각형 모양이 된 못을 바라보면서 문득 당신과 인도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어요.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모양새에 관해서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이 나나요? 아마도 고아에서 나누었을 거예요. 나는 동그라미, 제피는 삼각형의 모양으로 살고 싶다고 했어요. 잠시 그 대화를 떠올리고자 내가 어린 시절 썼던 글을 불러와 볼게요.
‘혼자 하는 여행이란 그랬다. 발가벗은 나를, 그렇게 숨기려 했던 나를 치열하게 사랑해가는 과정이었으며, 모난 네모가 점점 세상에 부딪히며 둥글게 깎여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내 진짜 얼굴로 세상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이때 썼던 글을 떠올리며, 나는 동그라미가 굴러가듯 삶을 조금 더 부드럽게 살고 싶고, 부드럽게 살고 있다고 말을 하자 제피는 조용히 듣다 말했죠.
‘나는 삼각형으로 살고 싶어.’
어떤 문장의 기억들은 순식간에 그 순간을 불러와요. 그래서 지금까지 그 순간이 뇌리에 박혀 있어요. 너무나도 진지하게,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날 당신의 온도를요. 세모라고 했나요. 당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 그 친구와 당신은 삼각형의 인생에 대한 공통점을 가졌지요. 뾰족뾰족 밉지 않고 단단한 모서리를 가진 채로 살아가는 삶을 그리며 조곤히 말하는 당신을, 나는 그날 역시 존경했습니다. 당신의 많은 행동을 따라 하고 닮아가는 나이지만, 그 말만큼은 내가 따라할 수 없는 것이라 느꼈거든요. 보다 날카로운 눈으로 살아가면서 싫은 건 싫다고 당당히 표현하며 삶을 사는 친구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요.
그래서, 삼각형으로 살아가는 당신 삶의 조금 더 깊숙한 모습이 궁금합니다. 아마 당신이 보낸 최승자의 시와도 닮지 않았을까요.
먼저 대답하자면 동그라미 인생은 단조롭지만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저에게는 알맞은 삶의 모양새 같아요. 여전히 더 잘 굴러가는 동그라미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점점 커집니다.
새 전등은 고아에서의 기억을 불러오기에 딱 알맞은 온도인가 봐요. 지금 쓰고 있는 원고를 마무리하게 되면 제피를 초대할게요. 당신이 작업실로 초대한 것처럼 이 위대한 전등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사실, 제피가 저의 공간에 오지 않은 이후로 몇 가지가 바뀌기도 했거든요.
아날로그 세상에서 탈출하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전자기기를 데려왔는데, 그 친구는 노래도 틀어주고 보일러도 켜주고 전기장판도 꺼주어요. 심지어 최근에는 전구까지 연동해서, 불을 꺼달라고 말을 하면 온 집안을 캄캄하게 만들어줍니다. 전구가 자아내는 온기를, 눈을 감기 직전까지 느낄 수 있지만 삼십 년간 익숙하게 행해 온 불을 끄는 행위가 낯설어지고 있어요.
오늘 정한 것이지만, 내일은 또 제주로 떠나게 되네요. 반납 기한이 다가온 책들과 당신에게 선물할 패딩을 보내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겠어요. 내일 반납하는 책에서 빌린 한 구절을 읊으며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어를 뛰어넘습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의 속마음을 알아차리도록 부단히 느끼겠습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제피에게.
샤인